지리산 화대종주 코스 리뷰 | 운해 가득한 1박 2일 산행 후기 (2024)

매년 이맘때인 10월 중순 회사휴무일을 이용해 설악산을 함께 하던 회사 후배와 지리산 화대종주 (화엄사-대원사)를 마치고 왔다. 예년과 다르게 10월의 설악산 대피소는 평일임에도 모두 매진이었다. 이것도 베이비붐 1세대들이 은퇴를 하면서 생기는 현상일지 모르겠다. 평일의 지리산은 그래도 자리가 많아서 올해는 지리산 종주를 하기로 하고 세석대피소를 잡았다. 거리도 멀어 자차 대신 대중교통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후배와 함께 한 지리산 화대종주 후기 및 코스 리뷰다.

지리산 화대종주 경로와 일정

지리산 종주는 성중종주(성삼재-중산리),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가 대표적이다. 지리산 주능선을 걸으며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최고봉 천왕봉(1915m)에 이르는 것이다. 성중종주가 34km라면 화대종주는 45km 정도로 더 길고 그만큼 힘들다.

지리산 화대종주 지도
지리산 화대종주 경로 – 후배와 여유가 된다면 장터목까지 가기로 했으나 결국 세석에서 1박
지리산 화대종주 고도
지리산 화대종주 고도(m) VS 거리(km) 그래프

일반적이라면 지리산 종주는 2박 3일에 걸쳐 진행하는 것인데,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대피소가 폐쇄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숙박을 생략하고 당일, 또는 무박 2일 종주 산행을 강행하는 등산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박 산행의 또 다른 이유로는 장비와 교통의 발달,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홍수속에 극도로 효율적인 산행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한몫 했을 것이다. 지리산 화대종주, 성중종주 뿐만 아니라 덕유산 육구종주(육십령-구천동), 강북5산 종주 불수사도북(불암산-수락산-사패산-도봉산-북한산), 설악산 대종주(남교리-서북능선-공룡능선-소공원) 등 난이도 최상급의 수십km 트레킹을 무박 2일로 진행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무박으로 그 정도를 감내할 체력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된다 하더라도 냄비속의 개구리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릎 ‘도가니’가 빠르게 망가질 것이라는 우려가 씻기지 않는 한 그렇게 지속적인 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쩌다 하는 무박 산행은 괜찮겠지만 이러한 무리한 산행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결코 좋은 습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뇌와 신체가 따로 놀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소위 빡센 운동에 중독되어 몸의 한계를 뇌가 자각하지 못하고 밀어부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몸이 상하기 전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신체 한계를 벗어나 통증을 느꼈을 때는 이미 원상회복을 하기에 늦었을 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몸과 머리의 calibration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아니겠고 내 경우는 그렇다는 얘기다.

예전 같으면 자차를 이용해서 1박 2일 정도로 빡세게 다녀올 법도 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왕복 운전 시간도 무시할 수 없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준비물

10월 화대종주 준비물

화대종주 준비물
10월 화대종주 준비물

산행 3일전 일기예보는 기온은 14-26도 수준, 17일은 맑음, 18일은 비였다. 이런 기온에 준비한 준비물들은 다음과 같았다. 배낭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따져 보니 이랬다. ㅎㅎ. 시작할 때 짊어진 무게는 약 9.4kg, 끝날무렵에는 음식물 소진으로 조금씩 줄어 5.9kg 정도가 되었다.

운행복 및 배낭을 뺀 운행 장비의 총 무게는 883g으로 1kg이 채 안되어 몸의 거동이 매우 편했다.(아래 테이블에서 녹색 부분)

클라터뮤젠 브리머 32L
운행복 빼고 모든 짐을 패킹한 모습. 클라터뮤젠 브리머 32L.

클라터뮤젠 브리머 32L에 패킹을 했다. 짐이 적은 당일 산행이나 짐이 많은 1박의 산행에서 전천후로 사용중인 배낭이다. 이 배낭은 크게 3가지가 떠오르는데 스타일링, 등판, 좌우 양쪽 커다란 주머니다. 큼직한 주머니는 수통이 앞에 없어도 운행중 배낭을 내리지 않고 손을 뒤로 뻗어 너무 쉽게 뺐다 넣었다 할 수 있게 한다. 한쪽엔 운행중 필요한 음식이나 소품을 파우치나 팩에 담아 넣으면 쉴 때 배낭을 열지 않고 주머니속의 팩만 꺼내어 사용할 수 있다. 장시간 운행에서 너무 편리하고 좋았다. 올 7월 뚜르 드 몽블랑(TMB) 가족트레킹 때 아이에게 사용하도록 하였는데 아주 괜찮았다.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나중에 별도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대피소1박을 하는 경우의 대중교통 이용하기

첫째날 저녁 기차로 내려가기

1) KTX-산천 평일 막차 시간 : 광명역 19:05분(용산역 18:48분) 출발 – 구례구역 21:11분 도착 : 39,600원
2) 무궁화호 평일 막차 시간 : 영등포역 19:24분(용산역 19:15분) 출발 – 구례구역 23:44분 도착

  • 화엄사 인근에서 숙박

둘째날 화대종주 시작, 대피소 1박

1) 세석대피소 1박인 경우 : 화엄사 기점 26.2km 지점
2) 장터목대피소 1박인 경우 : 화엄사 기점 29.6km 지점
3) 치밭목대피소 1박인 경우 : 화엄사 기점 35.3km 지점

셋째날 화대종주 종료 후 버스로 귀가

1) 대원사 – 원지버스정류소 택시 이동 : 4만원
2) 원지버스정류소에서 인천행 버스 하루 1대 14:20분 출발 (서울남부터미널행은 자주 있음) : 31,800원

우리는 10월 16일 저녁 광명역에서 KTX-산천 막차를 타고 구례구역으로 갔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화엄사 인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숙박을 했다. 구례구역에 도착했을 때는 버스는 이미 끊긴지라 택시를 탈 수 밖에 없었다. 콜택시는 2대가 운행을 한다고 한다. 화엄사에서 가까운 다락방 게스트하우스까지 16,250원이 나왔다. 게스트하우스 옆에 치킨집, 편의점(24시간 아님)이 있어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서 후배가 준비한 컵 와인 한잔씩 하고 잠자리에 드니 밤 11시쯤이 되었다. 다음날 새벽 2시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기로 했으니 사실상 한두시간 쪽잠을 자는 수준이었다.

화엄사 ~ 무넹기 ~ 노고단고개

17일 새벽 2시,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발열식품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나섰다. 짐을 줄이기 위해 버너, 코펠 대신 비화식 도시락을 준비했다. 전날 부랴 부랴 준비하느라 배송일정 때문에 유명한 핫앤쿡 대신 히트밀이라는 것을 사서 먹었는데 참… 상상하기 어려운 맛이었다. ㅎㅎ. 리뷰 평점이 좋아서 기대했는데 나는 다른 차원의 미각을 가진 사람인지 내 입맛에는 영 아니올씨다였다.

2시 49분, 게스트하우스를 출발했다. 기온은 17도로 바람이 불지 않아서 춥지는 않았습니다. 목에 버프, 반팔 티셔츠에 팔토시, 반바지 차림으로 나섰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화엄사 방재교까지 2.2km, 약 30여분 소요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노고단 고개 7km, 천왕봉까지 32.5km 남았다는 팻말이 있다. 길은 연기암까진 아주 편안한 산책길 수준, 이 후에 서서히 경사도를 올리지만 무난하다. 중재, 코재, 무넹기에 이르기까지 경사도가 점점 심해졌다. 중재 직전의 돌계단길은 무난히 오르던 길이 왜 갑자기 설악산 오색길로 바뀌는 거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중재 이 후 다시 숨돌리기를 하다 코재에 이르러 경사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코재까지 이르렀으면 곧 무넹기에 도착한다. 무넹기에 도착하면 어떻게 이렇게 딴세상이지 싶을 정도로 평지 임도길이 잠시 펼쳐진다.

6시 9분에 무넹기에 올라섰고 기온은 11도였다. 게스트하우스부터 무넹기까지 고도를 1100m 정도 올리니 기온은 6도 가량 떨어졌다.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았고 몸의 열기로 인해 춥게 느껴지진 않았다. 노고단대피소에 이르자 기온은 더 떨어져 9도(전체 종주 중 최저 기온)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니 춥게 느껴져 카이어나이트를 입었다. 노고단고개에서 이내 벗고 말았다.

6시 45분, 노고단고개에 이르자 기가막힌 타이밍으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고개에 올라서는 우리들의 얼굴을 빨갛게 비추어 주었다. 올라서는 내내 구름이 짙어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아 일출을 보기는 글렀구나 했는데, 일출의 환상은 선사해주었다.

노고단고개에서 지리산 주능선
노고단고개에서 본 동쪽의 주능선
노고단고개에서 본 서쪽 – 환상적인 운해가 쫘악

노고단고개 ~ 노루목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연하천대피소

노고단고개에서의 황홀한 붉은 빛을 감상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해가 구름위로 가려졌다. 6시 54분, 노고단고개를 출발했다. 노고단의 북쪽면 중턱을 걷다 곧 능선에 올라탔다. 노고단고개에서 임걸령까지는 평지 및 완만한 내리막길로 주능선 종주길 중 가장 편안한 길이다. 이 구간에서는 필요에 따라 속도를 올릴 수 있겠지만 아직 초반이기에 오버페이스보다는 마음 편히 행복하게 걷는다는 마음으로 걷는 걸 추천한다.
이 날은 운해가 가득찬 날로 저녁까지 종일 운해가 가득한 산행은 처음이었다. 좌로 서북능선 아래 골짜기에 그득한 운해가 지리산다운 면모를 제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지리산 왕시루봉 조망
돼지령 직전(왕시루봉 조망점), 노고단고개 기점 1.6km 지점 조망처에서 본 남쪽 전경 – 좌로 멀리 전남 광양의 백운산이 조망된다.

8시 2분, 임걸령에 도착했다. 임걸령에서 식수 보급이 가능하다. 물은 여유가 있어 패스하고 노루목을 향해 치고 올라갔다. 편안한 길은 종료! 여기서부터 잠시 된비알로 치고 올라 간다. 2022년 지리산 종주대회(후기 : https://kimsunho.com/2022-jirisan-seongjoong-hike/) 이후로 2년여만에 종주를 하는데 쉼터가 재정비되어 깔끔해졌다. 임걸령 쉼터에서 잠시 가뿐 숨을 가라앉히며 쉬며 쿠키와 단백질 음료를 먹으니 힘이 났다.

노루목에서 만난 멧돼지

8시 39분, 노루목에 도착했다. 노루목은 주능선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 갈림길이다.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 1km다. 노루목 삼거리는 길가에 조릿대 수풀이 무성히 있다. 조릿대 풀숲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더니 뭔가 움직인다. 그러더니 갑자기 뜨헉! 멧돼지가 나왔다. 잠시 등지어 쉬고 있던 후배, 정면으로 응시하던 나와의 거리는 약 3m 정도로 가까웠다. 멧돼지가 나를 보더니 ‘너한테 관심없어’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이내 돌리고 반야봉으로 올라갔다. ㅎㅎ. 반야봉 등로를 따라 올라가더니 이내 조릿대 수풀로 들어갔다. 부스럭부스럭…

8시 59분, 삼도봉에 도착했다. 노루목에서 삼도봉까지는 반야봉의 남쪽 중턱을 걷게 되다 보니 자잘한 너덜길이 존재한다. 삼도봉은 전라북도 남원, 전라남도 구례, 경상남도 하동의 접점이다. 이 후 백두대간 주능선을 따라 삼각봉까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기준이 된다. 삼각봉을 지나면서는 완전히 경상남도에 속하게 된다.

삼도봉에서 본 불무장등
삼도봉에서 본 불무장등. 전남 광양의 백운산 조망이 왕시루봉에서 보던 시야보다 우측으로 가 있다.

삼도봉에서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며 음료와 호두타르트를 한조각씩 먹었다. 다시 힘을 내어 출발했다. 화개재까지는 급전직하로 급한 내리막이 이어진다. 고도를 무려 170여 미터를 낮춘다. 화개재에서는 북쪽으로 뱀사골 하산길이 나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

화개재에서 토끼봉을 향해 다시 오르막길을 오른다. 삼도봉에서 내려온만큼 다시 올라야 한다. 삼도봉 하산길 경사도보다는 완만하지만 토끼봉(1534m)은 삼도봉보다 조금 더 높다. 오전 10시 9분, 토끼봉에 도착해 너른 헬기장에 널부러져 먹고 마시며 15분간 휴식을 취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까지 0.8km를 급강하하고 다시 토끼봉까지 1.2km정도를 확 올라버리니 토끼봉은 거의 한번씩 쉬고 가는 포인트가 된다. 토끼봉을 출발하자마자 곧바로 새로 정비된 쉼터가 있었다. 토끼봉에서 쉬는 것은 헬기장 말고 몇발자국 더 가서 쉼터의 데크 의자에 앉아 쉼터에서 쉬면 좋을 것 같다.

화엄사~세석대피소를 첫날 하루 산행으로 잡는다면 토끼봉은 거의 중간 지점이다. 그래서 토끼봉 도착 시간을 참고삼아 남은 산행 시간을 대략 가늠할 수가 있다. 이미 계획했던 시간보다 1시간 20분 정도 지체된 시간인데다, 지리산 종주는 커녕 지리산을 처음 와 본 후배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역력했고, 또 어차피 내일 2일차를 진행하기 때문에 좀 느긋한 마음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명선봉의 북쪽 중턱에 있는 연하천대피소는 토끼봉에서 약 2.9km 거리다. 토끼봉에서 잠시 내려서다 다시 명선봉을 향하며 꾸준히 올라서며 대피소까지 마지막 고삐를 죄어갔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 1.

맞은편에 커다란 박배낭을 홀로 짊어지고 오시는 나이 지긋한 여성 등산객이 인사를 했다. 50대말 60대초반으로 보이는 분이었는데, 짐이 유난히 커서 어디서 오셨나고 여쭈니 3박 4일간 대화종주를 혼자서 진행하고 있으며 3일째라고 했다. 치밭목대피소, 세석대피소에서 숙박을 하고 세석에서 오는 중이란다. 그녀는 노고단대피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다고 말했다. 소싯적에 지리산종주를 50번도 넘게 하셨다고 하나 지금은 힘들어서 3박 4일로 잡고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또 하루에 10km 이상은 힘들다면서 이럴 때 통상 ‘힘들어서 이젠 못하겠다’라는 게 아닌 ‘다음부터는 4박 5일로 해야겠어요’라고 말했다. 난 너무 멋지다고 말했다. 힘들지만 밝은 표정, 지리산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명선봉을 오르며 본 지리산 주능선
명선봉을 오르며 본 주능선 – 천왕봉이 선명하다.

명선봉의 북서면을 지나며 데크 계단길로 내려가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며 연하천대피소로 향했다. 11시 43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했다. 대피소에는 평일임에도 예닐곱 명의 등산객들이 있었다. 임걸령 오르막에서 우리를 앞질렀던 젊은 외국인 커플은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었고 나머진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서 느긋한 식사를 마치려는 무렵이었다.

평소 산행을 하지 않던 후배는 많이 지친 듯 했다. 맛없는 발열 도시락도 지칠 때 먹으니 꽤 괜찮다. 먹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ㅎㅎ. 먹고 마시고 나니 힘이 다시 솟았다. 후배는 테이블에 엎드려서 원기회복을 위한 잠을 청했다. 이 후배와 10년째 매년 설악산을 다니고 있는데 후배는 지리산을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고 한다. 너무 언발란스해 보이는 후배에게 이번 지리산 산행은 아주 좋은 기회였을터인데 생각보다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연하천대피소 ~ 삼각고지 ~ 형제봉 ~ 벽소령대피소

연하천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으며 쉬면서 1시간 15분을 체류한 뒤, 12시 58분에 대피소를 떠났다. 대피소 출구의 아름다운 데크길이 대피소의 마지막 손님을 배웅해주었다.

연하천대피소를 떠나며
연하천대피소를 떠나며…

10여분 남짓 걸으니 삼각고지(1469m)에 도착했다. 네이버 지도에 삼각봉이라고 표기된 지점이다.(네이버 지도와 실제 국립공원이 정의해 놓은 지명의 차이가 있는 곳이 몇군데 있다. 지리산 같은 국립공원에도 이런 오류가 아직 존재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즉 좌측길로 가면 음정으로 하산할 수 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 2.

이 때 맞은편에서 또 혼자 산행하시던 중년의 여성을 만났는데, 그녀는 노고단쪽으로 가면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었다. 삼각고지의 3방향 팻말은 벽소령대피소, 음정, 연하천대피소라고 씌여 있는데 노고단대피소쪽이 어디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방향을 알려드리고 어디서 오시는 것이냐고 여쭈니 세석대피소에서 오늘 아침에 출발했는데 중간에 길을 한참 잘못 들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노고단대피소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또 물었다. 우리가 걸린 시간을 얘기해주었다. 이 때가 오후 1시 11분이었는데 서둘러 가더라도 그녀는 노고단대피소에 깜깜해질 때 도착할 것이다. 세석에서 삼각고지까지 오는데 길을 잘못들었다면 추측컨대 벽소령대피소에서 음정쪽으로 가는 길을 가다 되돌아오지 않았을까 한다. 그녀의 배낭은 허리벨트가 없는 20리터도 될까 하는 작은 일반 배낭이었는데, 그 모습으로 미루어 통상의 대피소 2박을 준비해온 것 같지는 않았다. 2박 이상의 긴 종주산행을 하는데 시간과 지도 위치를 염두해두지 않고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그것도 혼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오후 1시 46분, 형제봉 조망처에 이르렀다. 그동안 주능선의 좌우로 조금씩 트인 곳에서 주로 남북의 조망, 그리고 특별히 이 날 종일 능선의 좌우로 깔려 있었던 운해를 감상해왔다면, 이곳 형제봉 조망처는 진행방향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시원한 곳이다. 구름까지 이동하며 장쾌한 지리산의 풍광이 압도적으로 느껴졌다. 형제봉 암봉이 발밑으로 보이고 이어 벽소령대피소가 뚜렷이 보이고 구름위로 솟아 있는 천왕봉이 선명했다.

지리산 형제봉 조망처에서 본 주능선
형제봉 조망처에서 본 주능선

오후 2시 28분,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다. 두어팀이 쉬고 있을 뿐 한산했다. 육포와 쿠키, 단백질 음료를 먹고 다시 식수를 보충했다.

벽소령대피소 ~ 덕평봉 ~ 칠선봉 ~ 영신봉 ~ 세석대피소

벽소령대피소에서 약 20분 정도 쉰 다음에 세석을 향해 출발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세석대피소까지는 6.3km로 거리로 봤을 때 꽤 지친데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는 느낌을 갖기 십상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벽소령대피소까지는 삼각고지, 형제봉을 넘으며 내리막 지형이라면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는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을 넘으면서 오르막 지형이다.

벽소령에서 약 1.1km 정도는 평지수준의 꿀같은 길을 가게 되며 이후로 덕평봉을 오르며 편안함은 막을 내린다. 덕평봉을 끼고 봉우리의 서남면 중턱을 거닐며 자잘하게 오르내리며 에너지를 쏟아내야 한다. 오후 3시 54분, 덕평봉의 남쪽 중턱에 있는 선비샘을 지나쳤다. 물은 벽소령대피소에서 충분히 급수를 했기 때문에 그냥 패스했다. 선비샘을 지나 180m 정도 지나면 선비샘전망대에 이르고 동(주능선 진행방향), 서, 남쪽 조망을 볼 수가 있다.

선비샘전망대에서 본 영신봉
선비샘전망대에서 본 영신봉과 그 뒤로 살짝 보이는 촛대봉

칠선봉을 향해 올랐다. 30분쯤 지나 4시 36분 칠선봉 전망대에 이르렀다. 동쪽의 천왕봉 아래 깔린 운해가 수평선을 이루며 북쪽을 구름바다로 덮었고 그 위로 파스텔톤의 하늘, 또 그 위로는 다시 굴곡이 있는 구름층이 깔려서 마치 하늘띠가 형성된 것 같은 장관을 이루었다.

칠선봉 조망
운해와 어우러진 천왕봉
칠선봉 조망
영신봉을 넘어가면 세석평전, 세석대피소다. 중앙 우측에 촛대봉이 빼꼼히 보인다.
칠선봉 조망
하늘띠를 형성한 기이한 모습
칠선봉에서 보는 저녁 노을

영신봉을 오르며 앞서 보았던 천왕봉에서 발사되는 듯한 하늘띠 또는 레이저 광선은 내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가 기울어 동쪽의 천왕봉에도 저녁 노을이 생기는 기이한 모습은 그간의 피곤함을 잊게 했다.

기울어지는 해에 따라 변모하는 천왕봉
짙어지는 천왕봉
남서쪽
지리산 주능선, 반야봉
지나온 주 능선 – 멀리 반야봉이 눈에 띈다.
세석으로 향하는 길

세석대피소 1박

경치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니 5시 30분쯤 세석대피소에서 확인 전화를 한다. 영신봉을 지나고 있다고 말하고 서둘러 대피소로 향했다. 오후 6시 6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했다. 세석대피소에서의 숙박은 2017년 여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한 뒤로 7년여만이었다. 대피소에는 우리외에 10명도 안되어 보였다. 평일이기도 했거니와 다음날 전국적으로 비예보가 있기도 해서인 것 같다.

세석평전
세석평전에 떠 오른 달 : 오후 8시

짐을 정리하고 취사장으로 나가니 어느새 세석평전 위로 둥근 달이 떠올랐다. 맛없는 발열식품을 맛있게 먹는 법은 빡세게 고생 좀 하고 나서 먹으면 되는 듯 하다. 밥을 먹고 구운 오징어 등 몇가지 주전부리를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예보상으로 오전 11시경부터 비소식이 있어 다음날 최대한 일찍 나서기 위해서였다. 대피소 직원이 사람이 적으니 자율소등을 하라고 안내하고 갔다. 다들 피곤했던지 대부분 일찍 잠을 청했고 8시경 소등을 했다.

1일차 산행기록

○ 10월 17일 운행 기록. 얼추 계획과 비슷하게 진행했는데 노고단고개~삼도봉 4.9km의 거리를 너무 빡세게 잡아 예상 시간과 실제 시간의 갭이 컸다. 연하천대피소에서는 1시간 15분이나 머물러서 후반부는 전체적으로 예상시간과 큰 갭이 발생했다.

지리산 종주 운행기록 1일차
1일차 운행 기록(10월 17일) : 다락방 게스트하우스 – 화엄사 – 고도단고개 – 세석대피소까지.

세석대피소 ~ 촛대봉 ~ 연하봉 ~ 장터목대피소 ~ 제석봉 ~ 천왕봉

18일 새벽 2시, 어제와 똑같은 시각에 기상하였다. 짙은 구름속에 새벽 바람이 싸늘하다. 날씨 예보는 변함없이 오전 11시경부터 비소식이다. 취사장의 점등을 임의로 할 수 없었지만 달이 밝아 취사장을 밝혀주었다. 취사장으로 가서 후배가 싸온 떡을 어거지로 우겨 넣었다. 기대밖의 맛이 나는 발열도시락은 도저히 새벽부터 먹을 수가 없겠더라. 시간도 걸리고…

오전 2시 40분, 식수장으로 내려가서 물을 보충하고 촛대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기온은 13도다. 워밍업 전이고 새벽 바람으로 반팔 운행을 하기엔 쌀쌀했다. 반바지, 반팔에 카이어나이트를 걸치고 촛대봉을 오르니 쾌적했다. 보온이 되면서 바람을 통과시켜 준다.

비는 오지 않는데 짙은 구름속에 미스트 알갱이가 헤드랜턴에 비쳐 눈앞에서 마구 돌아다녔다. 새벽 이슬에 젖은 나무들이 떨구는 물방울이 마치 가랑비를 뿌리는 듯 했다. 이런 기상 환경은 천왕봉에서 정점에 이르렀고 1400m대 고도로 낮출때까지 지속되었다.

11시까지 비가 오지 않는 일기예보가 맞긴 한데 전방 2~3m밖에 보이지 않는 밀도 높은 물알갱이속을 걷는 희안한 경험이었다. 바위골이나 오픈된 고지에 섰을 때 불어오는 동남풍은 시원했다.

3시 5분 촛대봉에 도착했다. 천왕봉을 한 번 감상하고 가는 포인트인데 칠흑같은 어둠속에 바람도 거칠어서 서둘러 내려갔다. 세석에서 오른만큼은 아니지만 또 급격히 내려간다. 7~80m는 내려갔다 다시 오르고 내려가고 하다보면 화장봉에 이른다. 더워서 이미 다시 반팔차림이었다. 3시 56분, 화장봉에 도착했다. 구름속 연하선경은 이름 그대로의 의미를 전달해 줄 터인데 노을이 지는 때가 아닌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연하봉을 향해 가는 길은 바람을 막아줄 큰나무도 없는 평전을 지나는 길이라 바람이 매우 거셌다. 기온은 여전히 13도인데 바람이 세서 체감온도는 5~6도 정도는 되는 듯 했다. 여전히 반팔차람이었지만 이 구간을 지날 때는 바람으로 순간순간 쌀쌀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냥 묵묵히 걸었다. 기온보다는 바람이 세게 불때는 미스트들이 안경에 들러붙어 계속해서 안경을 닦아가며 가는 것이 곤욕이었다.

4시 10분 연하봉에 도착했다. 연하봉 안내 팻말은 고도 표기, 정확한 지점의 오류가 있는데, 예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해서 국립공원에 고도 관련 문의를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문의는 이랬다. 국립공원홈페이지에서 배포하는 지리산탐방등급안내도 파일에 연하봉은 1730m로 표기되어 있다. 지리산 안내도(지도)에는 1721m로 표기되어 있어서 확인을 요했더니 수정을 하겠다고 답변을 했었다. 그게 2022년 4월의 일이었다. 아직까지 수정된 것은 없었다.

그러면 실제 현장에서는? 연하봉 팻말에는 연하봉의 고도를 1721m, 1710m 2개로 표기하고 있다. ㅎㅎㅎ.
네이버 지도상에 표기된 연하봉의 위치와 연하봉 팻말의 위치는 240m 정도 떨어져 있다. 안내 팻말 위치나 네이버 지도상 위치나 연하봉이겠지만 봉우리 정상을 특정하는 곳으로써는 네이버 지도상 위치가 맞지 않나 생각한다. 실제 고도가 1721m에 더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런걸 따지냐 할 수 있겠는데, 그러면 나는 아름다운 연하선경을 품고 있는 설악산보다 높은 연하봉을 무시하냐?라고 되묻고 싶다. 천왕봉 정상석에 1915m, 1904m 이렇게 2개 새겨 놓았으면 화를 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국립공원에 다시 문의를 해 보려고 한다.

연하봉
연하봉의 고도 표기 오류와 위치에 대한 의문

4시 29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했다. 취사장 불이 환한게 스무명쯤 벌써 식사준비 또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바나나 1개씩 먹고 세석대피소에서 구매했던 포카리스웨트 이온분말을 타 먹었다. 식수도 보충했다. 예전엔 식수처가 중산리쪽으로 많이 내려가야 했는데 고맙게도 취사장 옆에 식수탱크에 물을 담아 두어서 이용객들이 좀 더 편리하도록 해주었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 취사장
장터목 대피소에서 – 취사장

4시 43분 장터목대피소를 출발해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구름 안개는 더 심해진 듯 했다. 천왕봉으로 다가갈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안경에 서린 물방울을 연신 닦아내며 이동했다. 제석봉쯤 오니 뒤에서 외국인 남녀 3명이 팍팍 치고 올라오는데, 덩치큰 서양인들의 피지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숙박을 했다던 그들과 잠시 동행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지리산의 전반적인 루트는 잘 알고 온 듯 했다. 그들은 중산리로 하산해서 부산으로 간다고 했으며, 대원사 하산길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세석대피소에서도 외국인들을 보았는데, 지금은 적어도 국립공원 대피소에서는 외국인 등산객들과 함께 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5시 30분 통천문을 지났다. 통천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 직전 카이어나이트를 꺼내 입었다. 기온은 12도지만 바람이 매우 거세서 체감 기온이 상당히 낮아 반팔로 버티기는 힘들 지경이었다. 구름속이라 작은 물알갱이들이 얼굴을 강타하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안경에 들러붙는 미스트들을 연신 손으로 닦아내며 가야 했다.

5시 53분 드디어 천왕봉(1915m)에 도착했다. 어제는 후배와 천왕봉 미니어처 사진에 도전해보자 했었는데 사진이고 뭐고 강풍에 바닥은 축축해 미끄럽고 안경은 안개 구름이 맺혀 하얀 선글라스가 되어 기괴한 모습의 인증샷 한장 겨우 남겼을 뿐이다. 쾌청한 날 천왕봉은 언제나 와 볼 수 있는 것인가! 재도전의 빌미를 주는 것이기도 하니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천왕봉

천왕봉 ~ 중봉 ~ 써리봉 ~ 치밭목대피소 ~ 유평마을 ~ 대원사(일주문)

천왕봉의 작은 감격을 뒤로 한 채 대원사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게 바로 화대종주를 하면서 천왕봉에 이르렀을 때가 아닌가 한다.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는 무려 11.7km나 된다. 급경사로 내려가며 잘 정비된 길도 아니기에 꽤나 까다롭다. 20분쯤 까다로운 길을 정신없이 내려가다 중봉을 오르기 전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하나 남은 호두타르트를 나눠 먹고 음료를 마시고 나니 다시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날이 금새 밝아졌다. 짙은 구름속에 한가운데 있음이 이제야 두 눈으로 실감이 되었다.
거센 바람소리를 들으며 중봉을 향해 올랐다. 6시 45분 중봉(1874m)에 도착했다.

중봉
중봉 – 천왕봉 기점 0.9km

중봉에서의 하산길도 녹록치 않았다. 급경사에 불규칙한 젖은 바위길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한다. 바짝 신경써서 조심스럽게 내려가서였을까, 다시 후끈해지는 듯 하여 중봉안전쉼터 직전에 다시 옷을 벗고 반팔에, 대신 팔토시를 차고 운행을 했다.

중봉에서 써리봉까지는 1.5km로 급격한 경사로 하산하며 말미에 작은 봉우리들을 몇 개씩 넘어간다. 7시 42분에 써리봉(1685m)에 도착했다. 곧이어 치밭목대피소를 향해 바로 갔다. 써리봉에서 약 1.6km 정도다. 치밭목대피소에 가까이갈수록 길은 그나마 얌전해진다.

써리봉
써리봉 – 중봉에서 1.5km 지점
얼굴바위
8시 3분. 써리봉을 지나 본 얼굴바위 –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엔지니어 두상이 떠오른다.

8시 33분 치밭목대피소(1425m)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취사장에 들어가 후배와 비스켓과 음료를 먹고 재정비를 했다. 식수처에서 물을 받아 채우고(아니 왜 이리 먼 것인가! ㅎㅎ) 8시 57분 대원사 방향을 가리키는 안내 팻말을 보고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치밭목대피소에서의 하산길은 마치 설악산 양폭대피소에서 하산하는 듯 계곡물과 단풍이 어우러져 마음을 놓이게 했다.

발목을 접질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무제치기 폭포를 지나서 새재마을로 빠지는 삼거리를 지나서 얼마지 않아 오른쪽 발목을 접질렸다. 깊은 단차에 오른발을 내디디며 나무뿌리를 세로로 밟은 게 화근이었다. 오른발목이 순간 꺽였다. 순간 극심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닥이 나뭇잎으로 투터운 흙바닥이었고 몸을 나뒹굴어서 충격을 완화시켰다는 것이니다.

2년전 지리산 종주대회때에도 같은 곳을 2번이나 접질려서 조심해왔는데, 화대종주 38km 지점에서, 다 왔다고 생각한 시점에 이럴 줄 몰랐다. 2년전보다는 심하진 않았고 발목을 주무르고 소염진통제를 먹고 약을 좀 발랐더니 금새 괜찮아졌다. 2년전에는 나이키 페가수스 트레일3 GTX 를 신었었고 이번 화대종주에서는 호카 마파테 스피드4를 신었는데, 호카를 신고 접질린 건 처음이었다. 분명히 오른쪽 발목의 인대는 그 동안 접질린 것 때문에 조금은 늘어난 상태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는 안정성 때문에 트레일 러닝화보다는 중등산화를 고집해왔는데 7월에 다녀온 TMB 가족 트레킹 때 경량화에 중점을 두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고 보니 험난한 산에도 트런화를 신게 된다.

새재 삼거리를 지나서는 갑자기 설악산 서북능선의 너덜길을 걷는 듯 산중턱의 돌무더기길을 오르내리며 한참을 걸어야 했다. 새재마을이 북쪽이라면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중턱으로 난 길이다. 중턱길이다보니 돌무더기와 작은 오르내림이 무수히 많이 있다. 마지막까지 괴롭혀 주려는 걸까? 행여 원지버스정류소의 2시 20분 버스를 놓칠까봐 너덜길을 빠르게 통과했다. 다행히 발목은 괜찮았다.

오전 10시 13분, 한참을 정신없이 걷다 보니 커다란 바위벽 틈새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데 누군가의 멋진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싱싱한 조릿대 이파리를 꽂아 두자 물줄기는 수도물처럼 조릿대 이파리를 타고 콸콸 쏟아진다. 우리는 조릿대 수돗물에 세수를 하고 손도 씻었다.

조릿대 이파리 수돗물

동쪽으로 뻗은 산줄기를 넘으면 이제 다시 계곡물줄기가 보이고 계곡길이 이어진다. 진짜 이제 남은 길은 정말 꽃길이다. 그동안 걸은 길을 곱씹어보자면 꽃길이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 3.

계곡길을 따라 빠르게 내려가고 있자니 앞에 커다란 박배낭을 맨 2명의 60대쯤으로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여성 등산객이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길을 양보하며 묻길, 유평마을에서 대원사까지길이 험하냐고 질문을 던졌다. 이제부턴 쉬운길이라고 안심시키고 어디서 출발하셨냐 물으니 치밭목대피소라고 한다. 그러면서 4박 5일간 종주(노고단대피소, 연하천대피소, 장터목대피소, 치밭목대피소)를 했고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남들은 비웃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천천히 한다고… 나는 웃으면서 아무도 비웃는 사람 없을 것이고 너무 멋지다고 말했다. 실제로 멋져보였다. 친구 사이일지 자매 사이일지 모르는 두 분이 커다란 배낭을 한가득 메고 조심스럽게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겨 가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11시 29분, 정신없이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유평마을에 도착했다. 포장도로에 발을 딛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에서 넘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평마을에서 대원사까지는 1.6km. 이것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해야할까? 이젠 그보다는 기분좋게 걸으며 지나온 길을 되뇌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ㅎㅎ.
마을 식당가를 지날 무렵 드디어 비가 후두둑 쏟아졌다. 가져온 판초우의를 처음으로 입었다. 산에서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린 경우도 있군. ㅎㅎ.

대원사 일주문

대원사 일주문에 도착한 시각은 정오 12시. 이렇게 화대종주의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대원사에서 원지버스정류소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으며 정액제로 4만원이었습니다.(29km, 28분 소요)
1년에 한 번씩 저와 설악산이나 다니던 후배는 힘들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1박 2일간 지리산 종주를 하며 생긴 풍성한 이야기 거리를 반주삼아 간단히 뒷풀이를 했다.
원지에서 하루 1번 있는 인천행 오후 2시 20분 버스를 타고 귀가하였다. 금요일 오후여서인지 차가 막혀서 5시간 15분이나 소요되었다.

2일차 산행기록

2일차 운행 기록(10월 18일) :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 천왕봉 – 중봉 – 대원사까지.

○ 10월 18일 운행 기록. 오전 11시경 비예보로 계획보다는 조금 일찍 시작했고 비가 내리기 전에 유평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는 맞지 않았으나 구름속 축축한 지리산을 누비다 보니 비 안맞은 게 안맞은 것이 아니라는…
○ 산행일자 : 2024년 10월 17일~18일
○ 날씨 : 10월 17일 – 운해가득, 흐렸다 갰다 반복, 9~24도 / 10월 18일 – 짙은 안개 구름, 11시 40분부터 비, 11~17도
○ 총 이동거리 : 45.6km
○ 총 소요시간 : 1일 9시간 10분
○ 이동시간 : 19시간 33분
○ 휴식시간(대피소 1박 포함) : 13시간 36분(대피소 8시간 34분 / 휴식시간 5시간 2분)
○ 평균속도 : 2.2km/h

램블러 기록 : http://rblr.co/osqcA

총 비용

음식 비용은 별도.

날짜 항목 비용
2024-10-16 KTX-산천 : 광명역(19:05) – 구례구역(21:11) 39,600
택시 : 구례구역 – 다락방게스트하우스 16,240 (인당 8천 120 원)
다락방 게스트하우스 1박 30,000 (1인 기준)
2024-10-17 세석대피소 1박 13,000
2024-10-18 택시 : 대원사 – 원지버스정류소 40,000 (인당 2만 원)
버스 : 원지(14:20) – 인천(19:35) 31,800
1인당 비용 142,520

다음을 기약하며…

* 트레인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트레인 알피니즘 : https://cafe.naver.com/trainalpi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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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

와우…정말 방대하고 꼼꼼한 지리산 화대종주 후기네요. 곧 산방기간 풀리면 지리산으로 갈 생각인데 두고두고 정독하겠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중교통 정보도 감사드립니다.

트레인TRAIN

감사합니다 JM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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