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 드 몽블랑(TMB) 가족 트레킹(7) – 몽블랑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몽드라삭스
몽드라삭스 능선을 걷기로 한 날이다. 6시가 넘은 시각 눈을 떠 일기예보를 보니 구름이 있긴 하지만 해그림이 있다. 밤새 머금은 이슬로 텐트는 축 쳐져 있다. 오늘은 숙영지를 옮기지 않으니 배낭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는 기대감이 모두에게 큰 위안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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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목차 HTML그랑조라스 캠핑장에서 꾸르마예르 이동

오늘은 조금 더 느긋한 채비를 하고 캠핑장을 나섰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이다. 버스를 타고 다시 꾸르마예르 시내로 들어섰다. 아침에 오픈한 빵집에 들러 간단한 아침거리로 피자를 사서 테이크 아웃했는데 집에 가서 뎁혀 먹는 것이었는지 아주 차가운 것이, 이탈리아에서 맛 본 피자 중에서 가장 맛이 없었다. ㅠ
꾸르마예르 시내에서 출발해서 베르토네 산장(Rifugio Giorgio Bertone)을 거쳐 몽드라삭스 능선에 이르는 것이 오늘의 산행 계획인데, 다시 TMB 경로로 복귀하는 산행이 된다.

아베 앙리 광장 – 베르토네 대피소
오전 9시 49분 TMB경로인 꾸르마예르의 피아짜 아베 앙리(Piazza Abbé Henry 아베 앙리 광장)에 접해 본격적으로 트레킹을 시작했다. 꾸르마예르 시내에서 능선의 남쪽으로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한라산 높이의 베르토네 대피소(Rifugio Giorgio Bertone)를 거쳐 2300미터대의 몽드라삭스 봉우리를 지나는 이른바 몽드라삭스 능선을 걷는 것인데, 사방이 트인 이 능선에서 몽블랑의 대산괴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기대감이 우리를 흥분시켰다. 원래대로라면 이 능선을 지나 보나티 산장(Refuge Walter-Bonatti)까지 갔다가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지만, 전날 새벽 푸르고개에서의 천둥, 번개, 폭우에 혼비백산했던 아내와 아이들의 원성을 뚫고 이 원래 계획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조금 부지런하게, 조금 더 힘을 내면 할 수 있었겠으나 이젠 무리하지 말고 즐긴다라는 개념이 모두의 머리속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심적인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꾸르마예르 시내에서 스트라다 델 빌라에르(Strada Del Villair) 도로를 따라 등로에 접근한다. 진행 방향의 좌측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봉우리는 몽 셰티프(Mont Chétif)로 해발 2343m이다. 어제 모테 산장에서 폭우가 내리지 않아서 계획대로 세뉴고개를 넘어 오고 정규 TMB경로를 따라 꾸르마예르로 왔다면 바로 저 뾰족한 몽 셰티프의 남쪽 아래의 하산길로 내려왔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원래 계획은 세뉴고개를 넘어 몽 셰티프의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발 베니(Val Veny) 계곡가의 에귀 느와르 캠핑장(Camping Aiguille-Noire)으로 가는 것이긴 했다.
TMB에서 만난 사람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는데 꽤나 가파르게 올라간다. 아베 앙리 광장에서 출발한지 50분쯤 되었을까, 뒤따르던 아내와 아이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떠드는 게 아닌가. 뒤를 돌아 보니 홀로 트레킹 중인 한국인 아저씨와 대화중이었던 것. TMB 트레킹 중에 3번째로 만나는 한국 사람이다.
이 분의 일정을 들어보니 우리 가족의 트레킹 일정과 거의 일치했다. 8일간 계획했던 것과 이동한 날짜도 동일했다. 말하자면 같은 날에 대략 같은 일정으로 움직인 것인데, 여기서 조우한 것이다. 아무래도 네 가족을 챙겨야 한 나보다는 좀 더 수월했을테지만 혼자서 TMB완주를 위해 세심히 준비한 듯 했다.
배낭 무게는 식음료를 빼고 8kg 으로 맞추었다고 했으며 이 무게를 맞추기 위해 돈 좀 썼다고 했다. 우리는 어제 폭우로 모테 산장에서 세뉴 고개를 넘는 걸 포기하고 택시를 타고 꾸르마예르로 이동을 했지만 이 분은 비를 맞으며 기어이 세뉴 고개를 넘어 발베니(Val Veny) 계곡의 캠핑장까지 이동을 했다고 한다. 그 전날, 우리 가족은 푸르 고개를 넘어 2300m 고지에서 야영을 했는데, 이 분은 본옴므 산장 인근에 텐트 피칭을 하고 잤다고 하니, 어찌 보면 우리보다 이동속도가 빨라 더 안전하고 여유로운 여정을 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본옴므 산장 인근의 야영은 많은 트레커들이 이른 저녁부터 텐트 피칭을 해서 눈치볼 것 없이 텐트를 칠 수 있었다고.
파란만장했던 우리 가족의 지난 이틀간의 여정을 듣고 난 뒤 그는 스위스 구간을 버스와 기차로 skip할 거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열차 시간표를 보여주며 기차를 타고 트리앙(Trient)까지 가는 것을 추천했다. 아래 지도와 같은 경로인데 스위스의 라풀리(La Fouly)에서 버스를 타고 오르시에르(Orsieres)까지 간 뒤 기차를 타고 마르티니(Martigny)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트리앙(Trient)으로 가는 것이다. 내가 건너뛰려 했던 스위스 구간은 라풀리에서 샹페(Champex)까지였는데 이 분의 계획은 트리앙까지 건너뛴다는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은 양 환호했다. 원래 내 의도는 라풀리에서 오르시에르를 거쳐 샹페(Champex)까지만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사기와 이동 속도를 감안하면 그 분이 추천한 트리앙까지 대중교통 이동이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오늘의 산행 후 다시 가늠해보기로 했다.
그 분은 등산 경험은 많지 않다고 했지만 걷기 동호회 일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걸음 걸이가 아무래도 그룹핑을 해서 걷는 우리 가족보다 빨랐기에 먼저 가시라고 하고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물 수급이 어려운 구간
어제 꾸르마예르에서 사온 납작복숭아를 먹었는데 정말 꿀맛이었다. 베르토네 산장에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각자 500ml 생수 한 병씩만을 가지고 시작을 했는데 가파르게 오르며 땀을 쏟다 보니 금새 소진을 해버렸다. 지금까지 계곡수와 곳곳에 흐르는 물줄기가 있었던 것과 달리 이 길목에는 물한방울이 보이지 않아 정수 필터를 사용할 일이 없었다. 당연히 산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구간은 산장 전까지는 물을 구할데가 없었다. 여름이라면 500ml 2개씩은 챙겨야 안심이 될 구간이다.

오후 12시 20분. 꾸르마예르 시내와 TMB의 지난 구간이 한 눈에 들어오는 뷰 포인트에 이르렀다. 우측의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몽 셰티프. 왼쪽 아래, 봉우리 너머 능선으로 TMB 정규 루트가 있다.

꾸르마예르 시가지. 맨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그랑드 아살리(Grand Assaly 3173m)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국경을 이루는 산이다. 어제 택시를 타고 넘어온 곳이 쁘띠 생-베르나르 고개(Col du Petit Saint-Bernard 2188m)였는데 그 고개에서 국경선을 따라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림같은 몽블랑이 한 눈에

10분쯤 더 올라가니 몽블랑이 그야말로 한눈에 펼쳐지는 그림같은 위치에 이르렀다. 몽 셰티프는 몽블랑의 좌측 앞쪽으로 보인다. 몽블랑을 감싸는 구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눈앞에 베르토네 산장이 보인다.
풍광이 너무 멋져 둘째와 아름다운 몽블랑을 눈에 담으며 후미조인 아내와 첫째를 기다렸다. 20분쯤 지나 다시 출발. 5분쯤 걸으면 드디어 베르토네 산장에 도착한다.
꿀같은 베르토네 대피소
오후 1시 정각, 베르토네 산장에 도착했다. 아베 앙리 광장 기준 약 4.1km 거리다. 해발고도는 1989m. 한라산(1950m) 정도의 높이다. 꾸르마예르 시내 아베 앙리 광장 기준 고도를 1223m로 봤을 때 상승고도는 766m이다. 힘든 트레킹 뒤에 먹는 파스타와 음료, 맥주는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먹지 않는 펜네 파스타도 파마산 치즈가루를 듬뿍 뿌려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베르토네 대피소 – 몽드라삭스 능선
식수대에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출발.

베르토네 산장에서 10여분 쯤 올라오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
우리가 가려는 몽드라삭스(Mont de la Saxe) 능선길을 따라 가면 베르나르다 봉우리(Testa Bernarda, 2533m)가 나오고 콜 사팽(Col Sapin, 2435m)에 이른다. 산 중턱길인 좌측으로 가면 페레 계곡(Val Ferret)으로 가는 길이다. 중턱길로 가다가 우리가 야영중인 그랑조라스 캠핑장쪽으로 하산할 수도 있다.

몽드라삭스 능선
갈림길에서 몽드라삭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팔랐다. 하지만 가파른 경사길을 오르며 뒤돌아 보는 풍광은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을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었다.

몽블랑 정상에 구름이 한가득으로 아쉬웠으나 순간 순간 자태를 드러냈고 굵직한 브렌바 빙하(Brenva Glacier)가 위용을 뽐냈다. 브렌바 빙하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빙하라고 한다.





오후 2시 38분, 몽드라삭스 능선의 2230m 고지까지 와서 우리는 남은 시간을 감안해 무리하지 않고 멈추기로 했다. 베르토네 대피소 기점 1.1km 정도 더 진행한 거리였다. 원래 계획은 콜 사팽을 거쳐 보나티 산장까지 가서 페레 계곡으로 하산해서 셔틀 버스를 타고 캠핑장으로 되돌아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지체된 시간을 감안하면 무리였다.
대신 능선의 풀밭에 앉아 한참동안이나 몽블랑의 대산괴들을 감상하고 감탄했다. 이 때의 풍광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을 초월하는 정도였다. 구름 한점없던 아침과는 달리 몽블랑의 침봉들이 구름 모자를 쓰고 있는 듯 구름이 봉우리들을 덮고 있었다.






코 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몽블랑 산군들,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풀밭에 앉아 있다, 서성이며 몽블랑 산군들을 360도 파노라마 뷰로 바라보는 감흥, 직접 맛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1시간 정도 둘러 보다가 앞서 언급한대로 보나티 산장쪽으로의 진행은 무리라고 판단했고, 올라온 갈림길에서 중턱의 TMB 정규루트를 지나다 캠핑장으로 하산하는 것도 힘들어하는 가족들을 생각해 선택지로 두지 않았다. 꾸르마예르로 원점회귀 하기로 했다. 시내의 젤라또 아이스크림집에서 달콤한 젤라또를 먹기 위해서다. 하하.
오후 3시 33분, 하산하기 시작했다. 무료 셔틀 버스 막차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둘러 내려갔다. 역시나 선두조인 나와 둘째, 후미조인 아내와 첫째로 나뉘었는데, 올라올 때는 세월아 네월아 하며 올라왔다면 내려갈 때는 모두들 어찌나 빠르던지 피아짜 아베 앙리 광장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올라갈 때는 대피소 식사시간 포함해서 무려 약 4시간 50분이 걸렸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막차 버스에 쫓겨 젤라또를 놓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역시 동기부여는 최고의 파워다.
트레킹 요약
- 꾸르마예르 아베 앙리 광장 – 몽드라삭스 능선 2230m 지점 왕복 11km
- 꾸르마예르 아베 앙리 광장 출발 : 오전 9시 49분
- 베르토네 대피소 : 오후 1시
- 몽드라삭스 능선, 시작 기점 약 5.5km 지점 : 오후 2시 38분
- 하산 시작 : 오후 3시 33분
- 꾸르마예르 아베 리 광장 도착 : 오후 5시 25분
- 램블러 기록 : http://rblr.co/orIVE
꿀맛같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각자 한손에 들고 나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어제 들렀던 과일가게에 다시 가서 납작복숭아 2팩과 살구 1팩을 샀다. 국적을 물어보고 한국어 인사법을 가르쳐 달라던 그 점원이 잊지 않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주는 게 신기했다. ㅎㅎ.
그랑조라스 캠핑장에서의 마지막 밤
카르푸에 들러 식료품을 조금 더 사고 무료 셔틀 버스 막차 시간에 근접해서 버스를 타고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캠핑장에서 저녁시간에 특정해서 판매하는 따끈한 마르게리타 피자는 저렴하면서도 맛있었다.





오후 9시 50분, 불을 밝힌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 내일은 페레 계곡을 통해 보나티 산장을 거쳐 스위스의 라풀리까지 가야 한다. 하지만 모테산장에서 택시를 타고 꾸르마예르까지 온 달콤함과 캠핑장에 짐을 모두 내려 놓고 올랐던 몽드라삭스 능선의 꿀맛같은 트레킹을 맛 본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페레 고개를 넘는 험난한 여정을 이끌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라풀리(La Fouly)에 있는 글래시어 캠핑장(Camping des Glaciers)이 예약되어 있고 라풀리 낮에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의 조언대로 라풀리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트리앙까지 가려면 라풀리까지 갈 수 밖에 없다.
나는 조금 더 힘을 내어 계획대로 갔으면 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짐을 놓고 산행했던 오늘도 힘들었다며 완주의 의미가 큰 것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해 죄다 점프하자였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로 하고 그랑조라스 캠핑장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유튜브 영상
(계속 : 꾸르마예르에서 샤모니로 점프)
https://kimsunho.com/2024-tmb-08-from-courmayeur-to-chamonix/
트레인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트레인 알피니즘 : https://cafe.naver.com/trainalpinis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