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르 드 몽블랑(TMB) 가족 트레킹(11) – 대자연이 선사한 경이로운 락블랑 트레킹
수요일(7월 24일)에 샤모니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나서 다음날 드디어 고대하던 “락블랑 트레킹”을 위해 다시 나섰다. 락블랑 트레킹은 샤모니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 중 하나로, TMB 코스를 걷는 중에 별도로 다녀올 수 있는 인기 있는 코스다. 별도라 함은, 말하자면 TMB경로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라는 의미다.

(이전 이야기)
락블랑 트레킹 경로, 준비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날은 스위스 트리앙(Trient)의 르퓨티 캠핑장(Camping Le Peuty)에서 출발해 발브 고개(Col de Balme)를 넘어 몽록을 거쳐 락블랑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하지만 며칠전의 우여곡절끝에 반대로 레프하(Les Praz)에서 플레제르(La Flégère)까지 케이블카, 다시 곤돌라를 타고 랑덱스(L’Index)까지 올라가 락블랑까지 다다르는 여정이 되었다. 나는 약간의 아쉬운 마음도 있었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여전히 매우 좋은 결정이었다고 하면서 편안하게 케이블카로 오른다는 사실에 얼굴엔 웃음을 잔뜩 머금었다.

토요일(7월 27일) 메르 드 글라스 캠핑장에서 체크 아웃이지만 목, 금 1박 2일간 락블랑 백패킹을 위해 텐트는 철수하고 무거운 짐들을 캠핑장 창고에 보관 요청하고 나왔다(오전 10시 20분).

샤모니 시내로 가서 백패킹용 식료품을 사러 슈퍼마켓 U에 들렀다. 소세지와 음료수, 맥주 등을 샀고 혹시 몰라 다리 정도를 덮을 수 있는 용도로 매트 커버를 샀다. 오들로(Odlo) 매장에서 티셔츠 할인을 하길래 어센션 칠텍 폴로 셔츠 1장을 구매했다. 70유로짜리를 49유로에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원픽 샤모니 식당 쿨캣츠로 가서 나초, 멕시칸 프라이, 스프라이트, 맥주로 요기를 했다.
(쇼츠 영상)
https://www.youtube.com/shorts/GcR2sPjecCM
○ 플레제르 케이블카 역 – 플레제르 – 랑덱스 3.7km
샤모니 시내에서 레프하역으로 돌아와 플레제르행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했다.

오후 1시 16분, 케이블카를 탔다. 플레제르까지 8분 정도 올라가면 해발 약 1900m에 이른다. 몽블랑 대산괴가 한눈에 조망되는 멋진 곳이다. 카페와 플레제르 산장 등이 있다.


사진 몇 컷을 담고 나서 리프트로 갈아타고 10여분 정도 오르니 랑덱스에 도착했다. 랑덱스는 해발 2400m 정도다. 에귀 드 라 글리에르(Aiguilles de la Glière, 2852m) 봉우리의 동남쪽 아래다. 2천미터 중반대 고지인만큼 곳곳에 눈이 많이 있었다.
○ 랑덱스 – 락블랑 3.3km

랑덱스에서 락블랑까지의 락블랑 하이킹은 케이블카와 리프트로 오르막을 커버하고 난 후 2300~2400m 해발고도대를 비교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락블랑까지는 약 3.3km다. 에귀 드 르 글리에르(2852m), 에귀 드 라 플로리아(Aiguille de la Floria, 2888m), 에귀 뒤 벨베데르(Aiguille du Belvédère, 2965m)로 이어지는 동북쪽 침봉들의 능선 아래를 걷는 것이다. 이정표에는 1시간 15분 소요된다고 되어 있는데 우리 가족은 느긋하게 사진도 찍으면서 걸으니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랑 조라스(Grandes Jorasses, 4208m)와 덩 뒤 제앙(Dent du Geant, 4013m)도 보인다. 그 아래 골짜기가 메르 드 글라스 빙하가 있는 곳이다. 샤모니에서 몽땅 베르 산악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우리 가족은 5년 전인 2019년 9월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곳을 5년 뒤 이러한 고지에서 내려다 보고 있을 줄이야……

중간에 눈길이 나왔는데 아래와 같이 바위 중간에 걸쳐 있는 매우 좁은 눈길을 걸을 땐 보기와 달리 아찔함을 느끼기도 했다. 좁은 눈길 아래 경사가 매우 가팔라 보였고 자칫 발을 헛디뎌 미끄러져 내려가기라도 하면 마치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나고 나서 뒤돌아 보면 아래 사진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바위벽을 짚고 조심조심 건너는 아저씨와 같은 입장이었다. 한 여성 트레커가 결국 잘 못 디뎌서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는데 급격한 눈사면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미끄러져 흙바닥에 철푸덕 내려 앉고 말았다. 비명 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이끌었으니 그녀는 엉덩이의 아픔도 잊은채 벌떡 일어나 쪽팔림을 떨구려는 듯 했다.
푸르 고개의 혹독한(?) 빙하길을 겪었던 아내는 “또야?”하는 표정으로 이 길을 맞이했지만 락블랑 하이킹에서 조심해야 할 눈길은 이것이 전부였고, 우리 가족은 무사히 이 길을 지났다.


뚜르 데 크로슈(Tour des Crochues)라 불리는 암반 병풍이 펼쳐졌다. 에귀 뒤 벨베데르 봉우리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려온 화강암 바위산이다. 우리나라의 울산바위같은 느낌도 나지만 울산바위의 매끈함은 없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는 샤모니 건너편으로 3-4000m 급 침봉들이 펼쳐져 있다. 시종일관 눈이 즐겁다.
뚜르 데 크로슈 벽을 끼고 우측으로 돌게끔 길이 나 있다. 뚜르 데 크로슈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락블랑이다.


뒤를 살짝 돌아보니 케이블카에서 하차했던 플레제르가 눈 아래 보인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이벡스(Alpine ibex, 알프스 산양) 가 눈에 띄었다. 락블랑으로 가는 마지막 오르막길에 바위 절벽에서 서성이는 산양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 락블랑
오후 4시가 조금 넘어서 드디어 락블랑에 도착했다.
락블랑은 하얀 호수라는 뜻이다. 몽블랑과 주변의 빙하들에 반사되어 호수가 하얗게 보이기 때문이라는데 그렇게 보일 절묘할 때가 있다는 뜻일 게다. 호수에 몽블랑 침봉들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절경을 자아낸다.

락블랑 옆에는 락블랑 산장이 있다. 호숫가를 따라 가다 몽블랑 산군이 정면에 보이게 될 때, 그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조금 더 올라가 고지에서 락블랑과 몽블랑 대산괴를 한눈에 담았다.

동북쪽으로는 발므 고개(Col de Balme)가 보였다. 발므 고개는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선을 이루는 지점이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몽드라삭스 능선 이후로 이탈리아와 스위스 국경인 페레 고개(Grand Col Ferret)를 넘어 스위스 구간(라풀리, 샹페, 트리앙)을 지나 저 발므 고개를 넘어오게 되는 거였다. 트리앙의 Le Peuty 캠핑장에서 발므 고개를 넘어 락블랑으로 오는 것이 마지막 여정이었을텐데, 지금 보니 우리 가족의 상태로는 어림도 없는 코스로 보였다.

타이벡 매트를 펴고 앉아서 싸가지고 간 간식과 맥주, 음료를 마시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밤 9시가 넘어서 설영을 했다. 일몰 시간이 밤 9시가 넘기 때문에 여전히 밝았다.



날이 저물고 텐트안에 모두 누워 지나 온 TMB 여정을 곱씹으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저녁이 되며 거세게 불었던 바람도 잦아드는 듯 했다.
○ 뚜르 드 몽블랑(TMB) 가족 트레킹 연재를 마치며.
날씨, 가족들의 체력 등 돌발 변수로 계획했던 대로 170km 를 완주하진 못했고 계획한 일정에 우리 가족이 중간 중간 이은 트레킹 거리는 68km정도였다. 설악산 공룡능선 가족 탐방 등을 통해 체력을 가늠하고 나름 준비했지만 오랜 시간과 긴 거리를 함께 걸으며 생각지도 못한 생고생을 겪거나 체력을 소진하며 덩달아 약해지는 가족들의 멘탈을 부여잡고 계획한 일정에 완주를 하기엔 무리였던 것이다.
아내는 해발 2,665m 푸르 고개를 넘으며 생각지도 않았던 미끄러운 빙하길을 걷고 나서, 아무도 없는 고산에 우리만 남아 와일드 캠핑(통상 해발 2,000미터 이상, 저녁 8시 이후 피칭, 해뜨기 전 철수, 트레일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허용)을 했어야 한 순간, 게다가 종일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천둥, 번개가 내리치는 환경으로 돌변했을 때는 정말 멘탈이 나갔다고 했다.
나는 돌발 변수에 대비한 장비들, 시간, 거리, 지도 등의 정보를 준비하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닥쳐도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지만 나만 믿고 따르던 아내와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와서는 모두들 지난 모든 여행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TMB트레킹이 가장 기억에 남고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포함한 사소한 낙들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은 강력하다. 알프스 여행은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내 자신과 가족의 상념들을 발견하고 되새겨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다음을 기약하며……
트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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