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일) 올해 설악산 산행 개시다. 작년 10월 3월에 다녀온 뒤로 처음이니까 무려 7개월여만이다. 나이가 들수록 확실히 대사량이 떨어지는 걸 증명이라도 해 주는 듯 사상 최고 몸무게를 찍고 있는 요즘인데, 난데없이 빡센 설악산 산행을 덜컥 결정하고 나니 살짝 불안감도 들었다. 작년 10월엔 컨디션이 좋았지만 날씨가 안 좋아 오색-대청봉-남교리의 서북능선 종주를 포기했었는데, 이번엔 몸 컨디션이 안좋아 서북능선종주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오색-대청봉-공룡능선-소공원 코스로 진행하기로 했다. “설악산 솔로 하이킹”이다.
산행 준비물
- 복장 : 아크테릭스 신솔로햇, 헤드랜턴(새벽), 선글라스(낮), 버프, 반장갑, 콜롬비아 반바지, 안다르 티셔츠, 팔토시, 르꼬끄 자켓(새벽), 무릎보호대
- 그외 : 여분 티셔츠, 여분 양말, 아크테릭스 카이어나이트(불용), 파타고니아 슬레이트 스카이 자켓, 타이벡 1443R 시트(불용), 보조배터리 & 케이블, 정수필터 카타딘 비프리 1리터, 카메라 & 픽디자인 가방
- 행동식 : 패커블D팩 S에 모두 담음 – 호두 타르트 2개, 칼몬드 4봉지, 두유3개, 팥빵 2개, 초코파이 2개, 500ml 물 2개, 반찬통에 수박, 게맛살1, 부샤드 초콜렛 몇개, 바이탈 아미노 스틱 2개
- 배낭 무게 : 7.28kg (음료와 행동식 소비로 갈수록 무게는 조금 줄어듬)

산행 경로
남설악탐방지원센터(오색) – 대청봉 – 중청대피소(공사중) – 소청삼거리 – 희운각대피소 – 무너미고개(공룡능선 시작점) – 신선대 – 천화대 – 1275봉 – 킹콩바위(고릴라바위) – 큰새봉 – 나한봉 – 마등령삼거리(공룡능선 종점) – 비선대 – 소공원


오색 – 대청봉 구간
남설악탐방지원센터의 철문이 공식적으로 자동으로 열리는 시각은 새벽 3시다. 통상 5분에서 10분 정도 일찍 국립공원 직원이 문을 개방시킨다. 봄철 산불방지기간 동안 설악산 등로가 폐쇄된 후 개방된 첫 주말이다. 전 날인 토요일엔 비가 좀 내렸지만 일요일은 날이 개어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상대적으로 한주를 시작하는 전 날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오픈런을 위해 입구에 모여든 사람들은 빼곡했다.
개방 10분 전에 어떤 아저씨가 큰소리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더니 사업 상품 홍보를 한다면서 등산 양말을 나누어주었다. 웃긴 것이 여성용 양말뿐이라 여성들에게만 줄 수 있다는 것. 아내에게 가져다 주려고 손을 내밀었더니 현장에 있는 여성만 받을 수 있다고… ㅎㅎ. 눈쌀 찌뿌려지는 이 상황은 무엇인가?
오전 2시 54분. 문이 개방됨과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갔다. 단풍철엔 기차놀이를 할 정도라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선두 그룹에 서면 휩쓸리 듯 가는 게 늘 문제다. 선두 그룹은 속도가 매우 빠른데 쫓아가게 되고 뒤에서는 바로 바로 척척 따라오니 오버 페이스를 하기 일쑤다. 이번엔 그러지 않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 또 오버페이스다.
오색코스의 난이도와 상세한 경로 후기는 아래 링크 참조
3시 36분. 초반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 1쉼터(시작 기점 약 1.3km 지점)에서 3분간 휴식을 하며 빵과 두유를 먹었다. 돌이켜 보니 작년 10월 3일 오색-대청봉을 오를 때와 같은 패턴이다. 심지어 도착 시각도 3시 36분 똑같았다. 다만 이번엔 시작점에서 그 때 보다 2분 먼저 출발했으니 엄밀히 2분 늦어진 셈이다. 작년 가을에 비해 확실히 몸이 무겁고 조금 더 힘이 드는 것을 느꼈는데 기록이 증명해주고 있다.
이 후 완경사가 시작되고 숨 좀 고를 수 있게 내리막도 간간히 나온다. 오르 내리막이 조금 나오다 우렁찬 설악폭포를 어둠속에 듣기만하며 지나쳤다. 부지런히 가다보니 어느새 계곡을 건너는 철교에 이른 시점이 4시 17분(기온 11도). 다시 작년 10월 때와 기록을 비교해 보면 당시보다 4분이 뒤쳐져 있다. 덧붙이면 위에 1쉼터에서 휴식 시간이 당시에는 1분, 이번엔 3분을 쉬었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종국에 대청봉까지의 소요시간 차이로 귀결된다.
철교를 건너고 나면 다시 급경사 시작이다. 숨이 턱턱 막힌다. 4시 35분, 설악폭포상단쉼터에 도착해서 휴식을 취했다. 철교 대비 고도가 약 150m 높은 위치인데 기온은 9도로 약 2도가 더 떨어졌다. 철교에서부터 된비알이 심해 웬만해서는 이 쉼터에서 쉬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철인과도 같이 그냥 건너뛰고 팍팍 치고 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전자에 해당했다. 약 6분간 쉬며 숨 좀 돌리고 초코파이와 음료를 먹고 다시 출발!
4시 40분이 넘으니 어둠이 가시기 시작했다. 바람도 살살 불었다. 바람이 불 때는 쌀쌀함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곧 잦아들기 일쑤여서 옷을 끼어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제2쉼터(해발 1353m, 기온 7도)를 지나 경사도가 좀 낮아질 무렵(오색 기점 약 3.9km 지점) 나무 사이로 서북능선, 그리고 중청봉의 하얀 기상레이더 돔이 보인다.
5시 29분, 출발 기점 약 4.4km 지점, 해발 1588m, 기온은 5도를 가리켰다. 200미터 정도 더 가면 남쪽 점봉산 방면의 조망이 드디어 터진다. 예보상으로는 밤까지 비가 내리고 새벽부터는 맑음이어서 내심 운해속의 일출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점봉산 너머에 운해가 낀 것이 보이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5시 39분, 동절기 장비 착용 안내판이 붙어 있는 지점에서 하드쉘을 꺼내 입었다. 5시 48분, 대청봉에 도착했다. 기온은 4도였고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다행이었다. 간간히 휙 몰아치는 바람은 하드쉘 하나로 충분히 커버할만했고 쾌적했다.

오색에서 대청봉까지 2시간 54분이 소요됐다. 작년 10월 대비 11분이 더 걸렸는데, 정말 오랜만에 한데다 몸무게가 최대인 조건이다 보니 힘듦 정도가 확실히 더 크게 느껴졌다.
길게 늘어선 대청봉 인증 사진찍기 줄은 건너뛰고 정상석 한장, 그리고 정상석에서 몇발치 떨어진 곳에서 인증샷을 부탁해 찍었다. 구름낀 하늘과 속초 앞바다는 마치 도화지에 물감을 섞어 붓으로 뭉개 듯 터치해 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도 불분명했다. 6분 정도 쉬며 360도 주변을 둘러본 뒤 중청대피소쪽으로 내려갔다.
대청봉 – 무너미 고개 구간




대청봉-중청대피소 구간은 수목이 낮아 통상 바람이 거세게 분다. 이 날은 바람 세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하드쉘이 없으면 쌀쌀함을 느낄 정도는 되었다. 이 날 최저 기온 3도는 이 구간이었다. 6시 11분, 여전히 공사중인 중청대피소에 이르렀다.
중청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서북능선길이다. 중청삼거리에서 한계령삼거리까지는 5.4km, 한계령삼거리에서 하산하면 한계령이고 이게 7.7km다. 대승령까지는 13km, 대승령에서 하산하면 장수대이고 이건 15.7km이다. 대승령에서 하산하지 않고 남교리까지 가면 21.6km이다. 대승령을 지나서는 안산과 응봉 사이 십이선녀탕계곡으로 하산하게 되므로 서북능선은 중청삼거리에서 대승령까지로 보면 된다.
머지 않아서 오색-대청봉-서북능선종주-남교리 산행(총 27.2km)을 할까 한다.








6시 30분(기온 6도), 소청삼거리에 도착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소청대피소(0.4km), 봉정암, 백담사로 갈 수 있고 우측으로 내려가면 희운각대피소, 공룡능선 또는 천불동계곡을 통해 소공원으로 갈 수 있다. 희운각대피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소청삼거리에서 희운각대피소까지는 급격한 경사 구간이라 유의해야 한다.

오전 7시 16분,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하산하면서 또 햇살이 비치면서 기온은 꾸준히 올라 대피소에 도착할 무렵에는 15도가 되었다.
모든 테이블에는 이미 자리가 차 있어 대피소 앞 마당에 널부러지듯 앉아서 숨을 돌렸다. 빵, 칼몬드, 두유, 그리고 쁘띠젤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대피소의 휴식은 꿀같았다.
지금까지 소진한 음료는 두유 2개, 한모금 정도 남은 500ml 물 한 병, 남은 것은 500ml 물 한병과 두유 1개다. 1년전 공룡능선 가족 하이킹 때 물부족으로 고생을 했던 게 생각났다. 5월, 10월의 설악산은 새벽엔 쌀쌀하지만 한낮엔 기온이 상당히 올라가는, 일교차가 크게 나는 지역이다. 이번엔 나혼자인데다 정수필터인 카타딘 비프리 1리터짜리 챙겨와서 걱정이 없었다. 희운각대피소의 계곡가 테이블 옆에는 계곡물을 담을 수 있는 관로가 있다. 카타딘 비프리에 물을 가득 담아 공룡능선으로 향했다(7시 35분).
공룡능선(무너미고개 – 마등령삼거리) 구간
7시 43분, 무너미 고개를 지나며 공룡능선에 진입했다. 무너미 고개에서 신선대 조망처까지 30분이 걸렸다.
설악산 솜다리
신선대의 암벽 아래 바위틈에서 피어난 솜다리가 눈에 띄었다. 고산지대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인데다 예뻐서 더 관심을 받는 듯 하다. 설악산에서는 공룡능선에서 주로 볼 수 있고 간간히 서북능선에서도 발견된다. 완벽한 모습의 솜다리를 공룡능선의 첫번째 봉우리 신선대에서 보고 나니 능선을 거닐며 내내 솜다리가 있는지 세심히 둘러보게 되었다.
꽃잎과 잎사귀에 흰 솜털로 덮힌 것이 신기하면서도 고고해보인다. 유럽의 알프스 고산지대에 있는 에델바이스를 솜다리라고 부르는 줄 알았더니 비슷하지만 솜다리는 엄연한 한국의 고유종이라는 것도 더 특별해 보인다.
학명도 당연히 구분된다. 에델바이스의 학명은 Leontopodium alpinum, 솜다리는 Leontopodium coreanum으로 속과 종을 순서대로 표기하는데 솜다리의 종은 coreanum으로 ‘한국에서 유래한’이란 뜻을 품고 있다. 에델바이스는 alpinum으로 종을 표기하니, 눈치챘겠지만 알프스에서 유래했다는 의미다. Leontopodium은 사자(leo)의 발이란 뜻이다. 꽃이 마치 사자의 발바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좀 이상하지 않는가? 아니 한국 고유종으로 자생하는 솜다리를 Leontopodium(사자의 발)이라고 부르는 건 자연스럽지가 않다. 사자는 한국에서 서식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호랑이 발로 했어야 맞다. 호랑이의 라틴어 tigris를 이용해 Tigropodium이라고 해야 맞았을텐데 말이다. 식물 분류학의 기준이 유럽 중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말이다.

신선대


360도로 천천히 둘러 보고 신선대를 내려갔다. 사진만 몇장 찍고 신선대를 떠나는 것은 여느 때와는 다르다고 해야 할까? 많이 보아와서 그런지 두 눈에 담겨진 신선대의 풍광이 마치 사진과도 같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천화대 능선을 넘어야 한다.

천화대 : 하늘에 핀 꽃






천화대 능선을 넘어 본격적으로 1275봉을 오르기에 앞서 숨고르기를 한 번 했다. 가프르게 올라야 하며 촛대바위 지점까지 쇠봉이 설치되어 있다. 아래 사진과 같이 촛대바위 틈으로 들어가 보면 뾰족뾰족한 천화대 능선을 바로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겹겹이 쌓인 설악의 능선과 속초까지…
이 날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에 그냥 패스했다.

1275봉 – 킹콩바위
9시 45분, 1275봉에 도착했다. 가뿐 숨을 고르며 적당한 바위에 걸터 앉았다. 1275봉 암벽 아래 앉아 진행 방향을 보면 큰새봉, 나한봉, 마등봉이 차례로 보인다. 반찬통에 싸 온 수박화채, 칼몬드, 빵과 음료를 먹고 다시 출발(9:58). 1275봉은 공룡능선의 중간쯤 되니까 아직 갈길이 멀다.



10여분 쭈욱 내려가면 킹콩 바위(고릴라 바위)에 이른다. 북진 방향으로 보아야 킹콩의 모습이 보인다. 셔터 한 번씩 누르고 가는 포인트가 된 곳이다.

10시 12분, 1275봉에서 쭉 내려와 킹콩 바위에 도착했다.




큰새봉에 오르기 직전 바위벽을 하나 타고 넘어야 하는데, 신선대 방향쪽에서는 바위 계단식으로 쉽게 올라서지만 마등령 방향쪽으로는 직벽이어서 쇠봉이 설치되어 있다. 예전엔 밧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위벽 위에서 지나온 1275봉을 한 번 돌아보게 된다.
큰새봉


10시 49분(19도), 큰새봉에 이르렀다. 쉼없이 지나쳐 봉우리를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나면 큰새봉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에 이르게 된다.


나한봉
11시 30분(18도), 나한봉에 도착했다. 나한봉 아래 바위에 걸터 앉아 쉬고 있던 젊은 외국인 솔로 하이커와 잠시 인사를 나누고 물한모금 들이키고 다시 진군했다.






* 공룡능선 조망 리뷰 영상 아래 참조.
마등령삼거리 – 비선대 – 소공원
11시 48분, 마등령 삼거리에 도착했다. 무너미 고개부터 시작된 공룡능선 4.9km가 끝나는 순간이다. 4시간 3분이 소요됐다. 지칠대로 지쳐 벤치에 널부러지 듯 털썩 걸터 앉았다. 초코파이와 물을 마시고 초콜렛을 입안에 녹여 먹으며 에너지를 장전했다. 지치고 힘드니 음료는 물이 역시 최고였다.
7분간 쉬고 다시 마등봉을 향해 출발. 마등봉 중턱에서 비선대로 하산하게 되는데 이 마등봉 중턱까지 오르는 그게 또 쥐어 짜듯 힘에 부친다. 12시 3분, 마등봉 중턱 하산 기점에 이르렀다. 더 오르면 마등봉과 황철봉으로 이어지지만 이는 비법정 탐방 구간이다.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는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간만에 하는 설악산 공룡능선, 몸은 무겁고 다리는 아픈데다 한낮이 되니 기온은 상승하고… 여느 때와 달리 마등령 하산길 3.5km가 왜 이리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특히 마지막 금강굴에서 비선대까지의 거리 0.4km 이정표가 맞나 싶을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그만큼 몇개월간의 산행 공백이 심폐 지구력 등 신체 능력 저하에 영향이 큼을 새삼 느꼈다. 다시 회복 루틴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후 2시 24분(21도), 비선대에 도착했다. 마등령 삼거리에서 2시간 29분이 소요됐다. 소공원에 도착한 시각은 3시 10분.
다음을 기약하며……
산행 기록
코스 : 오색-대청봉-소청삼거리-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신선대-1275봉-큰새봉-나한봉-마등령삼거리-비선대-소공원
총 소요시간 : 12시간 16분
이동 시간 : 11시간 15분
휴식 시간 : 1시간 1분
이동 거리 : 19.1km
램블러 기록 : http://rblr.co/owzoq
트레인과 함께 하는 커뮤니티, 네이버 카페 트레인 알피니즘 : https://cafe.naver.com/trainalpinism
